말씀일기5-나눔의 축복(수4장, 눅12장 등)

말씀일기 111226   수4장  ‘돌 이야기’

 

아침에 요단강 돌 이야기 읽고 나갔는데, 종일 돌 많이 만지고 돌 들고 날라야 했다.

 

우리 교회가 빌려 쓰는 사무용품 보관실을 다른 방과 서로 맞바꾸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이 방은 우리가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옛 것들을 뜯어 내고 우리 용도에 맞게 새롭게 꾸며야만 했다.

 

온통 먼지를 뒤집어 쓰고, 옷도 더럽혀 지고, 어깨도 조금 쑤시지만, 집사님, 장로님들과 함께 일한 시간들은 행복이고 감사였다.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강을 말리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요단강 돌들이 기념하듯이, 오늘 새 방 수리를 위해 집사님 장로님들이 함께 뜯어내고 돌을 들어 나른 일은 비록 사진 하나 찍어 둔 것 없고, 더 단장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마저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엔 Kaiserswerth에 기념돌 하나 세운 것과 같이 느껴진다.

 

올 한해 ‘말씀일기’와 더불어 교우들과 함께 기도해 왔던 ‘선교관’, 사실 말이 선교관이지, 그저 어느 때라도 우리 맘대로 모일 수 있는 조그만 방 하나라도 빌려 보자던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 선교교회가 최소한의 이름 값 하는 출발일 수 있지 않느냐고, 우리가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둘러 앉아서 성경공부도 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지역 선교를 위해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과도 같은 것이니, 비싼 대가를 치르고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몇몇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헌금도 해 주셨다. 한국으로 들어가신 분, 한국에서 방문해 주신 분들이 조금씩 사랑을 보태 주시고, 심지어는 한국에 계신,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분이 선교헌금을 보내 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확신했었다. “그래, 분명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는구나!” 그러면서도 교회 형편상 재정적으로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지라, 철없는 목사가 괜한 말을 꺼내놨나 싶어 마음 한편이 편하질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비록 시내 한 복판도 아니고, 넓은 공간도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우리 형편에 맞는 조그만 공간을 주시므로,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선교적 열정을 더 키워가라고, 그러면 더 놀라운 것도 준비해 주시겠다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신 것이다(24). 우리는 오늘 그 기념 돌들을 들어 나른 것이고…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듯이, 하나님 나라를 더욱 넓혀 가는 우리들 되게 하소서. 공간 이전에 우리의 마음이 더 커지게 하시고, 선교적 열정이 더 뜨거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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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일기 110719  눅10장    “70인 제자단”

 

감사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놀라운 날. 언제나처럼 나는 짧은 기도 후 정해진 오늘의 말씀 눅 10장을 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읽었던 말씀이었는가! 그런데 첫 절에서 바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큰 번개가 내 온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듯 했다. 이걸 말을 하고 글로 표현하면, 그 전율이 다 사라질지도 몰라 자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쉽지가 않다. 내 남은 생의 비전을 보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70인 제자단’.

 

한 동안을 멍한 채로 있다가, 2절부터 마지막 절 42절까지 찬찬히 읽어갔다. 세상에, 내게는 모든 말씀이 ‘70인 제자단’을 향한 말씀이다. 연이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논리에 상관없이 적어볼까? 현실은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한다(2). 약칭 ’70 제자단’이라 해보자. 더 줄여 ‘70’이라 해볼까? 70은 사자가 되어서 이리 가운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으로서 세상으로 간다(3). 70은 몸이 가볍다(4). 70은 peace-maker들이다(5-6). 70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 쫓는 권능을 행한다(9, 17-19). 70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9, 11)를 선포하고 세워가는 것이다. 70은 ‘회개’와 ‘심판’을 선포한다(13, 14). 70은 일정기간 동안은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고 전적으로 선교한다(1, 17). 70은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을 기뻐한다(20). 당연하게도 70은 예수가 구주이심을 분명히 본다(23). 70은 영생을 사모하되,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선한 이웃이 된다(25-37). 70은 열심히 섬기되 말씀에 더욱 집중한다(38-42).

 

예수님은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셨다. 그러나 그것이 무정부주의나 무조직주의는 아니었다. 12제자를 찾아 부르셨고, 따르는 무리들 중에 “따로 칠십 인을 세우”(1)셨다. 특히 ‘70제자단’이 내 맘에 드는 것은 이들이 12제자들처럼 어떤 타이틀을 갖고 공동체 핵심에서 무슨 권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름도 없이 섬기는 이들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결코 쉽지 않았을 상황에서도 오히려 가장 크게 헌신한 이들이다. 1차로 ‘12 제자단’을 세워가는 데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12 제자단’ 6개조가 되면 ’72 제자단’(다른 사본에서는 이렇게), 즉 ’70 제자단’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일기’를 통해서 나와 성도들을 훈련시키시고, 점점 더 주님의 뜻과 계획을 밝히 알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꾼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이다. 아무래도 누가복음 10장은 내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한 장으로 남을 것 같다.

 

말씀일기 110720 눅11장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기억에도 분명한 나의 첫 기도는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였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시작되려는 때 내게 매일같이 필요했던 것은 말씀과 기도였다. 특히나 내게 기도는 그 중요성도 중요성이려니와, 성경말씀처럼 객관적인 전거가 없고, 그저 주변 사람들이 하는 기도를 보고 배워야 하는 입장이어서 그랬고, 가끔은 회중 가운데에서 입을 열어서 기도함으로 나의 믿음을 증거해야만 했기에 더욱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기도를 쏟아내기 이전에 내 기도, 즉 주님과 나와의 대화는 벌써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내가 제대로 구하기도 전에 가장 귀한 선물 “성령”(13)을 내게 주시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런 저런 시간들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셨고, 그러면서 기도를 배우게 하셨다. 감히 기도의 기적, 기도의 기쁨을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믿음 생활 초기에 ‘기도학교’ 같은 것을 통해서 기도의 모범-자세, 내용, 순서 등등을 배우고 익히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주님과 한 번 시작된 대화는 내 일생 계속되어 왔고, 언제든지,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고, “주님”하며 엎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불평과 원망을 할 때도 심지어는 욕을 할 때 조차도 하나님을 향해서 했다는 것이 하나님께는 불경스러운 것이었지만, 나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모든 것이 성령의 도우심이었다. 이렇듯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수 없이 한심한 모습을 보여드렸던 나이지만 오늘도 아버지를 부르며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정말 어려우면서도 쉽고, 쉽고도 어려운 게 기도이다. 기도를 가르쳐달라 했던 제자의 마음도 그래서였을까?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는 어떤 내용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짧지만 굵고 깊은 ‘기도의 모범’을 들려 주시고는(2-4) 기도가 무엇인지(5-7), 기도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8-10), 기도로 얻을 수 있는 최고가 무엇인지(11-13)를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실제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 배운다.” 제자들은 이후로 계속해서 훈련 받으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훈련 받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 33년째, 여전히 나는 기도하게 된다.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말씀일기 110721   눅12장   “나의 배낭”

 

‘제자단’(10장)의 동력은 ‘기도’(11장)임을 깨닫고,

‘제자단’의 구체적 표시는 결국 ‘물질에 대한 태도’임을 확인한다.

“너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34, 새번역).

“Denn wo euer Schatz ist, da wird auch euer Herz sein”(34, 루터번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21)면 안되지 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지 하면서도,

‘그래도 먼저 풍성했으면…’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

 

내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가 풍성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려 보지만,

아무래도 나는 다시, 하늘을 보고 들판을 봐야 할 것 같다.

 

까마귀, 백합화,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해야 한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33)어야 한다.

까마귀나 백합화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나의 배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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