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은 집사의 말씀일기 행 15:36-16:5 ‘싸움도 하나님의 역사에 쓰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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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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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과 바나바가 싸웠다. 마가를 동행할 것에 대한 의견차이가 표면적 이유였다. 이 사건 이후 누가는 바나바의 행적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면 바나바가 잘못한 걸까? 단순해 빠진 내가 이 싸움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고작 누가 잘못한 것일까 였다. 우스갯소리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선과 악,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열심을 낸다고 한다. 문득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목사님이 하고싶어 하는 일에 대해 제직들이 적지 않게 반대의 의견을 표현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틀어지고 그러다 보면 제직들은 제직회에 참석하기 싫어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고 여론과 맞지 않는단 이유도 있었다. 나도 어떨 때는 목사님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러다 보면 그냥 사람이 싫어 지고 교회를 떠나고 싶었다. 사람이 모이면 으레 의견차이가 생기고 분쟁이 생기고 감정싸움이 되면서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한 공동체로 모인 교회내에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부류가 생겨나기도 한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후손인 나는 먼저 과연 누가 잘못한 것일까 따져보고, 잘못한 것 같다는 쪽에 같이 손가락질하며 그 반대편으로 편입되고자 힘쓴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실라, 바나바와 마가 각자의 행적을 모두 사용하시고 그들을 통해 은혜의 역사를 펼쳐 나가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인 사람들이 싸우고 편을 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공동체를 위해 본이 되지 못할뿐더러 모이기에 힘쓰기를 방해하고 좋지 않은 감정만 계속해서 양산될 뿐이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누구의 의견이 채택이 되던 간에 교회는 어떠한 일을 감당했고, 어떤 모습으로든 은혜의 역사는 쓰여졌다. 그러나 깊어진 감정의 골은 메우기 힘들었고, 그 부분은 불치병처럼 그 공동체에 남아있었다. 그 교회를 떠나오고 난 후 당시 일을 돌이켜보니 사람이 하는 일들에 의견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걸 감정싸움으로 변질시킨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철저히 날 회개하게 하셨고, 공동체 안에서 본이 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날 무릎 꿇게 하셨다. 바울도 바나바도 그랬을 것이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 걸로 서로 등을 지고 사랑으로 감싸 안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회개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안에서, 특히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매 순간 기도하고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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